|
냉방병 |
|
냉방병
“나는 퇴직한 지 10년 차인 김모이다. 경의선 백마역에서 양평역까지는 편도로 한 시간 사십 분이 걸리는데, 역사에 앉아 찐 옥수수라도 한 대 먹으며 시간을 삭인다면 두 시간 왕복으로는 네 시간 정도가 걸리는 셈이다. 네 시간이면 한나절 심한 더위는 다 피한 셈이다. 역사나 열차 안에서 또래가 있나 살펴보지만, 있다 해도 그에게 내가 다가가기도 어색하고, 혹여 그가 내게 온들 나도 경계를 풀지는 못할 터라 그 네 시간은 외롭고 서늘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가다가 지루하면 팔당역에 내려 냉면 한 그릇 할 수도 있겠고, 냉면으로도 헛헛하다면 양평역을 지나 지평역에 내려 짱짱한 햇살을 이고 양조장 곁 판매점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고 마트에서는 오이 하나를 더 사서 광장 귀퉁이에 앉아 자작하면 될 텐데, 냉기에 굳어버린 그 시간에는 햇살이 오히려 고마운 것이다.”
언젠가 여름 어느날에 코를 훌쩍거리고 목이 깔깔하면서 몸이 너무 무겁다며 아는 분이 오셨다. 냉방병으로 보여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쐬신 것 같다며 조금 자제하시고 적당한 운동으로 땀을 내는 게 좋겠다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안 그래도 에어컨을 좀 약하게 하고 싶으나 내 집이 아니라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디서 그런 강한 에어컨 바람을 쐬시냐 물었더니 경의선을 하루 종일 탄다고, 백마역에서 양평역이나 지평역까지 매일 왕복한다는 것이었다. 전철이 무료이고, 전기요금은 비싸고 날은 너무 더우니 가장 저렴한 피서가 바로 전철을 탄다는 것이었다. 따옴표 속에 든 윗글은 그분의 말씀을 내가 정리한 것인데, 고독, 경제적 곤궁,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의 반복, 면역기능의 저하 등이 한군데 다 모여 생기는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냉방병은 더위에 노출된 신체를 시원하게 하거나, 시원한 곳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체온의 항상성이 유지되지 못해 생겨나는 여러 증상을 뜻한다. 좁은 의미에서는 주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통한 과도한 냉방으로 한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생긴다. 냉방병은 진단명으로 확정된 질환은 아니어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와 관련된 환자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더위와 관련된 여름철의 질병을 ‘서병(暑病)’이라 하는데, 냉방병은 그 중에서도 ‘음서(陰暑)’라고 할 수 있다. 에어컨 등의 냉기가 상기도의 점막을 건조하게 하면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쉽고, 배를 차게 하면 장운동의 변화나 장내 미생물 환경을 나쁘게 하여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다. 따라서 냉방병 혹은 음서의 증세는 주로 재채기와 콧물, 두통, 코막힘 증상으로 나타나며, 몸이 쉽게 피로해지고 나른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평소 위장관이 약하였던 사람은 배가 살살 아프고 묽은 변을 보거나 설사를 할 수 있다. 아울러 신체의 면역력을 약화하므로 평소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면 관련된 증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인체의 골격근, 특히 중심 근육은 체형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체온 조절과 대사작용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근육의 감퇴는 상대적으로 낮은 체온을 나타내게 하고, 외부의 열기나 냉기로부터 야기되는 체온 변화 요인을 극복하고 정상체온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노인이나 여성은 건강한 젊은 남성보다 냉방병에 취약해서 기본적인 증상이 더 잘 생긴다. 더욱이 여성은 생리통이 심해지거나 생리가 불규칙해질 수 있으며 냉이 많아질 수도 있다.
과도한 냉방을 하지 않기, 근육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여 적정한 골격근의 양과 근력 유지하기,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영양 균형과 체온 조절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냉방병 예방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여름철의 실내 온도는 22℃ 이상 유지하도록 하고, 냉방기기를 켤 때 환기를 자주 하도록 한다. 2~3시간마다 적어도 10분 이상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배를 노출하거나 지나치게 얇은 옷을 입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냉기가 심한 곳에 오래 있어야 한다면 한기가 들어오는 목 주변을 스카프나 얇은 수건 등으로 감싸주도록 한다. 더위를 심하게 타지 않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데, 평소에 얼음물만을 먹는 습관이나 과도한 육류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냉한 것에만 익숙해지면 조금의 더위에도 냉방을 과하게 하기 쉽고, 고열량의 육식을 지속한다면 체온이 상승하기 쉬운 조건이 된다. 냉방병이 왔다면 가벼운 이열치열(以熱治熱)의 각오가 필요하다. 한약은 가볍게 땀을 내어주고 소화기의 기능 정상화를 유도하는 처방을 활용하는데, 향소산(香蘇散), 이향산(二香散),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등이 대표적이다. 복통이 심하거나 근육통이 함께 있다면 침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