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가기 주메뉴로 가기 카피라이트로 가기

동국 HEALTH

동국 HEALTH 보기

치매는 혼자 앓는 병이 아닙니다


치매는 혼자 앓는 병이 아닙니다

- 돌보는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

 

병원에서 치매 환자분들을 진료하다 보면, 저는 환자분보다 배우자나 가족들의 표정을 더 자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치매는 환자 한 사람의 병이 아니라, 두 사람의 병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치매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억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던 대화가 줄어들고, 함께 하던 일상이 줄어들고, 서로에게 의지하던 시간이 줄어드는 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남편이 옆에 있는데 혼자 사는 것 같아요.” 이 말 속에는 단순한 돌봄의 어려움보다 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외로움입니다.

우리는 보통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진료실에서 많은 보호자분들을 만나보면, 우울증보다 먼저 찾아오는 감정은 외로움인 경우가 많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매일 얼굴을 보고 있어도, 예전처럼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감정을 나누기 어려워지면 사람은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부부 사이가 좋았던 분들일수록 이런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결정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길수록 그 관계가 변해가는 과정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많이 의지하고, 많이 사랑했던 만큼 잃어버린 느낌도 크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매 환자를 오래 돌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약일까요, 좋은 치료일까요?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돌보는 사람이 먼저 무너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배우자나 가족들이 너무 지치고, 잠을 못 자고, 우울해지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결국 돌봄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치매 진료에서는 환자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의 우울과 불안, 불면과 외로움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혹시 배우자가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 이유 없이 눈물이 많아졌거나, 잠이 오지 않거나, 모든 일이 귀찮고 의욕이 없거나, 혼자라는 느낌이 자주 든다면, 그것은 단순히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혼자 견디려고만 하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보호자가 건강해야 환자도 오래 집에서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매는 긴 병입니다. 그래서 가족들 중 한분이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하기보다,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원은 환자만 오는 곳이 아니라 보호자도 함께 와도 되는 곳입니다. 보호자가 상담을 받고, 잠을 잘 수 있게 도움을 받고, 우울증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환자와 가족의 삶은 훨씬 안정될 수 있습니다.

치매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지만, 곁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관계의 변화를 견뎌야 하는 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치매 환자를 진료할 때, 환자 한 분만이 아니라 그 곁에 있는 배우자와 가족의 마음도 함께 살펴보려고 노력합니다. 누군가를 오래 돌보고 계신 분들께서도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뒤로 미루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치매는 혼자 앓는 병이 아닙니다. 그리고 돌보는 사람의 마음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 정신건강의학과 이해우

    이해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진료분야

    노인우울증, 치매, 경도인지장애, 불면, 불안

등록일2026-04-01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